간첩조작’도 공방보도… KBS 특히 심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했으며 현재도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충격적인 ‘간첩소동’을 일으킨 이후 정치권은 물론 사회전반이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애초 ‘17대 국회에 간첩이 암약중이다’는 도저히 믿기 힘든 ‘폭로’의 진실은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이미 사법처리조차 끝난 12년 전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었냐는 소모적 논쟁으로 정국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몇몇 방송보도도 이러한 ‘정치권의 파행’에 대해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기보다는 공방에만 매달려 혼란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KBS뉴스, 정치권 공방에 가장 매달려

‘정치권 공방’에 가장 매달린 방송사는 KBS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12월10일 3건의 보도다. 3건이나 보도됐지만 모두 여야대립과 정치권 공방에 초점을 맞출 뿐이었다.

<전력 시비 격화>에서는 “이철우 의원의 전력을 놓고 여야간 공방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며 “열린우리당의 반격에 한나라당은 추가의혹으로 맞섰다”며 전형적인 ‘공방보도’의 모습을 보였다. 또 <‘충성 맹세’ ‘고문 조작’>은 분석보도의 형태를 띠긴 했지만 엇갈리는 여야의 주장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쳐 실체파악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같은 날 보도된 <공안 검사와 386>은 무책임한 폭로정치의 가해자인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을 ‘공안검사’ 출신의 “거침없는 성격과 입담으로 한나라당의 차세대 저격수”로 묘사하고, 이철우 의원을 “주 의원과 대조적으로 골수 386 운동권 출신”으로 표현해 진실규명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흥미 위주의 대결식 보도태도마저 보였다.

11일에도 KBS는 <법적 대응·이념 공세>에서 “여야의 노동당 가입 공방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여야의 ‘공방’에 초점을 맞췄고, 12일 <동상이몽 ‘국정조사’>도 “노동당 가입 공방, 여야가 동시에 국정조사 카드를 들고 나왔다”며 “여야합의로 국정조사가 실현되기보다는 정치공방만 무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해 정치권의 ‘공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SBS도 정치권의 공방에 초점을 맞추긴 마찬가지였다. 10일 <‘전력시비’ 갈수록 확산>은 여야의 공방과 함께 ‘사상검증’까지 자행하는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다. 11일 <‘고문 조작설’ 공방>에서도 “조선노동당 가입 논란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갈수록 격화…고문을 통한 사건조작 여부를 놓고서도 설전을 벌였다”며 여야의 공방에 매달렸다.

그러나 SBS는 10일 보도된 <‘가입’ ‘조작’>에서 중부지역당 사건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황인오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황씨는 이 의원의 경우 이미 법과 선거의 심판을 받은 만큼 더 이상 문제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해 한나라당의 억지 주장을 비판할만한 판단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MBC, 무책임한 폭로 비판적 접근 눈길

MBC는 ‘정치공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다른 방송사에 비해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폭로에 비판적으로 접근해 시청자들이 사안의 진실을 판단할 수 있게 도왔다.

MBC는 10일 <무책임한 폭로>에서 “한나라당은 한 인터넷 신문의 보도 이외에는 아무런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며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판결문 어디에도 조선노동당 가입이나 간첩이라는 말이 없다”고 보도하고, 한나라당이 민해전과 중부지역당이 같은 단체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작 중부지역당 사건의 총책이었던 황인오씨는 민해전 가입이 조선노동당 가입은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전달해 한나라당 주장의 근거없음을 지적했다.

같은 날 보도된 <확인도 안하고>는 한층 강도가 높았다. 이 보도는 “한나라당이 이렇게 뒤로 물러서게 된 것은 폭로에 급급한 나머지 사실관계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나라당이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간첩소동’을 일으키게 된 과정을 상세히 보여줬다.

이밖에도 MBC는 11일 <“고문” 공방>에서 “여야의 전면전이 이제는 수사 결과의 고문조작 여부로 번지고 있다”며 “애당초 제기됐던 간첩 시비와는 별개의 논쟁으로 가고 있다”고 보도해 본질을 비껴난 정치공방을 비판했다.

또 ‘고문’ 여부에 대해서도 “사건의 핵심이었던 황인오씨도 수많은 시국사범이 고문을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받아들여진 적이 있느냐며 되물었다”고 보도해 한나라당이 이철우 의원 판결문에 고문 여부가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고문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주장하는 데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기계적중립 보도, ‘폭로정치 ’ 본질 가려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하고 근거없는 소동으로 정기국회는 물론 임시국회까지 파행으로 몰아가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방송보도는 이번 사태마저도 ‘기계적 중립’의 틀에 꿰맞춰 ‘정치공방’으로 치부해 ‘폭로정치 ’라는 본질적 문제를 가리고 있다. 더욱이 소동의 원인 제공자가 명백한 ‘폭로’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 확인에 충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이를 중계하는 데 그쳐 사태를 ‘확대재생산’하는 구태를 보이고 있는 점 역시 우려스럽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보이고 있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 글은 2004년 12월 15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와 보도사이'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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