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폭력과 대기업 책임에 눈감나?

울산건설플랜트노동조합(이하 플랜트노조)의 파업이 70여일 동안 지속되고 있다. 방송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이들의 파업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폭력시위’가 발생하자 시위장면 중계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노동자들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부각하고 나서 이미 방송사 내외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방송보도 “과격성·폭력성만 부각”

아울러 플랜트노조가 수십개의 하청업체 외에 대기업인 SK 등 원청업체에게도 성실한 교섭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한 지경이다.

지난 4월8일 플랜트 노동자들은 울산시청 항의방문을 진행했다. 박맹우 울산시장이 ‘노동부 소관이라 시에서 할 게 없다’는 식으로 사태해결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이를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찰은 시청 안마당에서 연좌농성을 하던 노동자들을 정문을 봉쇄한 채 강제 연행하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시청민원실로 피신한 노동자들을 ‘점거농성한다’며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또 늦게 도착해 시청 밖에 있던 노동자들이 폭력연행에 항의하며 시청진입을 시도하자 다시 폭력을 행사하며 이들을 연행해 이날 모두 800여명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SBS는 4월8일 <울산시청 기습진입>에서 “울산지역 건설 근로자들이 울산시청으로 난입해 2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며 “조합원들이 의사당 내 민원실로 몰려가면서 현금지급기 등 일부 기물이 파손되고 2시간 가량 업무가 완전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경찰이 행사한 폭력행위는 물론, 800여명의 연행소식조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4월 1일에는 평화적인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다 경찰에 의해 24명의 노동자가 강제연행당했으며, 동료 조합원들의 경찰서 항의방문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강제연행자가 또 발생했고, 플랜트노조는 다시 경찰의 폭력을 항의하기 위해 울산 신정동의 공업탑 사거리를 점거하는 일이 있었다.

이날 방송3사 최초의 플랜트노조 관련 보도가 23초 단신으로 SBS에서 나왔으나 경찰이 휘두른 폭력은 생략한 채 “동료 조합원 연행에 항의하며 울산시 신정동 공업탑 로터리를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 뒤 30분만에 해산했다”고 보도하는 데 그쳤다.

5월 6일과 17일 플랜트 노동자들이 헬맷을 쓰고, 쇠파이프를 들고 거리에 나선 배경에는 경찰의 폭력적 강제진압으로 머리가 찢어지고, 갈비뼈에 금이 가고, 마구잡이로 ‘닭장차’에 실려 갔던 이 같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KBS는 5월 17일 <또 충돌…수십명 부상>에서 “노조원들이 만든 공격용 장비를 앞세우고 쇠파이프를 휘두르자 경찰저지선이 힘없이 무너져…기동대 36개 중대가 동원됐지만 역부족”이라며 경찰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보도하면서 노동자들의 ‘폭력성’을 부각했다. 이날 경찰은 몇 대의 살수차는 물론 확인되지 않은 약품까지 섞은 고공 물대포까지 동원해 무자비한 진압을 했지만 KBS에 따르면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MBC도 <“가담자 사법처리”>에서 “쇠파이프와 돌멩이 등으로 무장한 시위대를 방패와 곤봉만을 든 경찰이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며 부상당한 경찰의 인터뷰를 담았다.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민망하게 기자가 직접 시위용품을 손에 쥐고 흔들면서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이런 쇠채찍이나 갈고리 같은 불법시위용품 1000여 점이 경찰에 압수됐다”고 보도하는 등 노동자들의 폭력성을 부각했다.

‘왜’가 없는 파업보도로 일관

한편 방송들은 노동자들이 SK공장 정유탑에서 농성을 벌이고, SK 공장 진입을 시도한다고 보도하면서 정작 노동자들이 ‘왜 SK공장을 문제삼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5월 18일 SBS <장기파업 왜?>부터 뒤늦게 방송사별로 플랜트노조가 주장하는 ‘집단교섭’과 사측(하도급업체)이 주장하는 ‘개별교섭’이 맞서는 상황을 한 건씩 보도했지만 SK 등 원청업체의 책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하나같이 피해갔다.

인터넷 대안매체들이 “교섭에 나선 12개 업체 중 8곳은 SK로부터 하도급을 받고 있는데, 원청인 SK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업체들로 하여금 교섭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 교섭해태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레이버투데이), “원청회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어 사태 해결의 열쇠는 SK 등 대형 발주회사들에 있다는 것”(프로메테우스)이라며 SK의 책임에 대해서 보도한 것과 비교하면 거대 지상파의 보도가 깊이가 없을뿐더러 본질도 비껴갔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5월23일 플랜트 노동자들이 평화적인 삼보일배 행진을 하다 500여명이 전원연행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KBS와 MBC가 단신으로 다루는 데 그쳤다. 아직 ‘사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SK에 대한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방송보도로 사회공론장에서의 논의기회를 박탈당한 울산건설플랜트노동조합의 파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은 2005년 5월 25일 미디어오늘 '보도와 보도사이'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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