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에 대한 방송의 침묵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내용을 담은 동국대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의 인터넷 칼럼을 두고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에 따른 사법처리 강행 의지를 밝히는 등 이른바 ‘강정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대한상공회의소 김상렬 부회장의 “강 교수처럼 반시장경제적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수업받은 학생들에게는 취업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요지의 발언까지 불거지며 이 논란 아닌 논란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MBC ‘강교수 논란’ 한 건도 보도 안해

하지만 ‘논란’이 격해지고 있는 것에 비해 방송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긴 하지만 특히 MBC와 KBS의 침묵은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까지 유발시킬 정도다.

강정구 교수가 처음 ‘문제의 글’을 기고한 7월 27일 이후 현재(10월 11일)까지 방송3사가 다룬 보도는 모두 5건(방송3사 메인 뉴스 프로그램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마저 SBS가 단신 1건을 포함해 3건을 보도했고, KBS가 단신 1건을 더해 2건을 보도했으며 MBC는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또 강 교수의 경찰 출두로 사법처리가 논란이 됐던 8월 25일과 9월 2일, SBS가 관련 내용을 진보-보수단체의 대립을 중심으로 보도하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 전쟁, 이 말은 북한이 남침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과 “경찰의 조사가 학문과 사상의 자유 침해”라는 진보단체의 주장을 비중 있게 다뤘을 뿐, KBS는 강 교수의 칼럼 기고 직후인 7월 28일 <“통일 내전” 파문>에서 “좌우 역사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보도를 한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과 사법처리 논란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논리적, 이성적 반박하는 ‘보수’는 왜 없나

지금 강정구 교수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논란’은 방송들이 침묵할 사안이 아니다. 처음 강 교수가 글을 기고한 직후의 논란이 그나마 사실관계에 대한 논란 내지는 학문의 영역에서 토론할 수 있는 성격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경찰이 사법처리 운운한 이후 과정은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갗가 중심이 되었다.

곧 해방 이후 60년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냉전의 굴레 속에서 분단의 역사를 강요받았던 우리 사회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한 민주적인 사회,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관용의 사회, 북을 ‘적’이나 ‘빨갱이’가 아닌 통일의 상대로 바라보는 탈냉전의 사회로 갈 수 있느냐를 따지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사실 강 교수의 주장은 합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냉정하게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의견의 일치는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강 교수의 말처럼 역사적 사실관계를 두고 논쟁할 사안이지 이념의 틀에서 감정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전쟁은 한 달 안에 끝났을 것이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그럼 공산통일하자는 것이냐”는 식으로 대응하며 심지어 ‘사법처리’와 ‘취업불이익’까지 거론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도대체 김일성이 ‘남침’으로 통일을 하려고 했다는 것과 이승만의 ‘북진통일’이 어떻게 다른지, 베트남의 공산통일은 통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반박을 하는 ‘보수’는 왜 없는 것인가.

국가보안법 존재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이렇게까지 이르렀는데도 방송들이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곧 학문의 자유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까지 제약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여의도의 혹독한 겨울바람 속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진행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부르짖었다. 당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의 생명력은 잃었을 것이란 기대를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마음 속에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보란 듯이 기세등등하게 살아 있다.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으로 가는데 방송들은 더 이상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일부 수구신문들이 강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이라도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나마 “대학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해 구속수사나 사법처리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아직도 후진국임을 자인하는 꼴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 지난 7일 MBC 논평에서 위안을 삼는다.

(이 글은 2005년 10월 12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와 보도사이'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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