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수구언론에 휩쓸리는 ‘전략적 유연성’ 보도

지난 1월 20일 발표된 ‘한미장관급 전략대화 공동성명’, 다시 말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관련된 정부의 비밀문서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반기문 외교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합의한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을 압축하자면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되 한국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이 같은 공동성명의 내용은 발표 직후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그 동안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의지와 상관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밝혀왔던 정부 입장이 이번 성명에서 ‘한국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내용으로 바뀌어 결국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적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대만의 양안분쟁 등 동북아 급변사태에 미국이 개입할 경우 우리나라가 미군의 전초기지로 전락하면서 자동적으로 분쟁에 휘말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됐다.

방송들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 소식이 전해졌던 1월 20일부터 1∼2건 보도를 다룬 것 외에는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정부 비밀문서 공개로 외교라인에서 미국과 전략적 유연성을 협상하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고, 정부에서조차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됨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방송들은 전략적 유연성의 본질적 문제를 짚기보다 ‘비밀문서 유출’에 더 큰 초점을 맞추거나 정부 내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 심지어 ‘강경 자주파와 온건 자주파 사이의 갈등’ 따위를 부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KBS는 2일 <전략적 유연성 논란>에서 ‘미국이 자의적으로 주한 미군을 빼는 것이 외부의 무력 공격에 대해 공동 대응하고, 이를 위해 미국은 한국에 군대를 주둔한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신에 맞지 않다’며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상세히 설명했고, “한국은 미국의 신군사전략의 전초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대목도 짚었다.

하지만 여기에 그쳤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더 심도 깊은 접근을 하지 못했고,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문서공개로 드러난 정부 외교라인 협상과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못했다. 그러다 6일에 가서는 “최근 청와대 내부 문건이 잇따라 유출, 공개되면서 볼썽사나운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 같은 문건 유출이 이른바 자주파 내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설 등 외교 안보 라인의 난맥상으로 비치는 현실이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갈등’을 부각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MBC는 지난 2일 <전략적 유연성 파문>에서 “외교부가 청와대 보고도 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사업 유연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외교각서를 미국과 교환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며 NSC 내부보고서의 내용과 논란을 다룰 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다루지 않았다.

또 3일 <공개 일파만파>에서 ‘비밀문건 공개’와 관련한 ‘청와대-여당-정치권’의 논란을 다루는 데 그쳤고, 4일에는 ‘비밀문서 유출’이 “정치권 일각에서는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낙마시키기 위한 특정세력의 음모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청와대 내부 암투설까지 나오고 있다”고 보도해 의제설정의 방향을 ‘갈등’에 맞췄다.

SBS는 최 의원의 공개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던 1, 2일에는 전혀 다루지 않다가 3일 <대미노선 갈등>에서 공개된 문서의 내용이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논란은 조금도 설명하지 않고 “이라크 추가 파병 등 대미 외교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불거졌던 이른바 반미 자주파와 친미 동맹파 간의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며 아예 처음부터 ‘갈등’만 부각하고 나섰다. 4일에도 “NSC가 한미간의 중요한 협상내용을 1년이 넘도록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내부문서가 또 공개됐다”면서 정작 ‘중요한 협상내용’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대미 외교정책 노선을 둘러싼 여권내 갈등이 폭로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갈등’을 부각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한반도 평화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심사숙고하지 않고 손쉽게 ‘갈등’이나 생산해내는 SBS의 보도태도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공영방송 또한 ‘전략적 유연성’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나 외교라인의 협상 과정의 문제에 중점을 두던 것에서 일탈해 ‘정부 내 갈등’에 초점을 옮긴 것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일부 신문들이 이번 사안을 두고 ‘정부내 강경자주파와 온건자주파의 갈등’을 부각하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은 것에 방송들이 휩쓸렸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06년 2월 8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와 보도사이'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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