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을 보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넌 왜 조중동 따위를 보냐?'고 물을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뭐, 나도 조중동의 시사 관련 기사나 논조는 마음에 안드는데, 문화면이 알차잖아.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그런 면에서 너무 부족한 거 같아."

조중동이 읽을 게 많고, 재밌다는 말이다.
이 말 자체도 전혀 공감할 수 없지만,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문화면 등 시사적인 사안과 거리를 둔 지면이 '읽을 게 없다'는 지적도 공감하기 힘들다.

"그건 너의 선입견이고, 잘 봐. 한겨레와 경향이 얼마나 재밌는데."

그러면서 언급하는게 주로 한겨레의 'ESC'와 경향신문의 '매거진X'였다. 요즘은 경향신문 '매거진X'가 나오지 않아 한겨레 ESC가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별지(섹션)개념인 ESC 외에도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문화면은 재밌다.

진짜냐고? 예를 들어보겠다.

오늘 한겨레 문화면은 최근 대중문화와 관련한 나의 관심사를 확실히 충족시켜줬다.


오늘(3월 9일) 한겨레 16면과 17면을 가득 채운 기사들이다.

16면에는 KBS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히로인 안영미가, 17면엔 '장기하와 얼굴들'이 등장했다.

물론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히로인'은 안영미만 있는 건 아니다. '나쁜 남자'의 김경아와 '국민 요정' 정경미, 그리고 그 어떤 수식이 필요없는 강유미 모두가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대박코너'로 만든 히로인들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주목받는 건 '이거뜨라'라는 '빅히트'시키고 있는 안영미일 것이다.

얼마 전 '순정만화'의 장도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안영미의 활약도 기분좋게 보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안영미가 '황현희PD의 소비자고발'과 함께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 더 큰 역할을 하면서 '큰 웃음, 빅 웃음'을 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요즘 개콘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어제도 정말 배꼽 잡았다. 골룸에 이어 '황비호' 분장을 하고 나온 안영미, '헬보이'를 분장한 정경미와 '원더우먼'으로 나온 김경아, 그리고 마지막에 '판타스틱4'의 돌사나이 '씽'처럼 몸에 돌덩이를 붙이고 나온 강유미까지 그들의 분장을 보고 배꼽을 잡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감성이 메마른 인간일게다.

3월 8일 개콘의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몇장면들



특히 턱밑까지 내려오는 코털을 기른 채 변발을 한 안영미의 분장은 단연 백미였다. 콧바람으로 코털을 날리다 나중엔 코털을 귀에 꽂아 뒤로 돌리는 장면은 말 그대로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안영미에게 "영미야 울지마 코털 젖어"라고 대박 코멘트를 날려주는 강선생님의 대사 또한 백미였다.

그런 초대박 코미디를 보고 난 다음날 한겨레에서 골룸도 황비호도 아닌 예쁜 얼굴의 안영미가 그 동안의 연기생활과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만드는 동안의 에피소드, 그리고 인기비결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털어놓는 기사를 접한 것은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 3회 밖에 하지 않은 코너인데, 한겨레는 과감하게 지면 하나를 털었고, 안영미를 전면에 내세운 발빠른 센스를 보여준 것이다. 사이드에 배치된 <'분장실의..' 출생의 비밀>도 재밌었다. 담당PD조차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두 달 동안 묵혔다'니!!

한겨레에서 이런 발빠른 대중문화 관련 기사가 나오게 된 것은 아마도 이 기사를 쓴 하어영 기자의 공력도 상당 부분 작용했을 거다. 최근 한겨레를 보면 대중들의 정서와 관심사를 콕콕 찝어낸 방송 프로그램 관련 기사가 제법 눈에 띄는데, 그 기사들 밑에서 '하어영'이란 이름을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17면의 '장기하와 얼굴들' 관련 기사는 전혀 새로운 한겨레만의 트렌드인 것은 아니다. 제목처럼 '인디'에서 출발했으나 이미 주류 대중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장기하 혹은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미 많은 매체가 앞다퉈 다룬지 오래다.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식 앨범 1집의 초판 8천장이 동나고, 콘서트가 45분만에 매진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들의 앨범은 그저 보도자료 베낀 것처럼 의례적으로 다루지 않고 "거칠게 얘기하자면 송골매와 송창식, 산울림의 음악을 포크 록 스타일에 맞춰 그만의 해학적인 가사로 표현해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해 준 대목은 '장기하와 얼굴들'과 그 1집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줬다.


작년 2월, 난 이 블로그에 '병만씨! 왜 하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나요??'란 글을 쓴 적이 있다. '달인'으로 한참 인기가 물오르기 시작하던 김병만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것을 두고 느낀 바를 쓴 글인데, 대중적인 웃음 코드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나 또한 굉장히 좋아하는 김병만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것을 보고 '나는 마치 짝사랑하던 사람을 조선일보에게 빼앗겨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근데, 이번에는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안영미를 내가 좋아하는 신문이 한겨레가 잘 썼다. 기사가 나온 시기도 굉장히 적절했고, 기사 내용도 매우 재밌고 알찼다.
누가 한겨레의 문화면이 약하다고 하는가. 별 쓰잘데기 없는 문화 관련 기사 여러개 모아놓거나 색깔없이 보도자료 짜집기 한 것보다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관심사에 집중해서 좋은 시각으로 재밌게 쓰면 그게 좋은 문화 기사가 되는 거다.

비록 하루하루 나오는 일간신문이지만 한 번 읽고 버려지는 기사보다는 읽고 나서 기억에 남고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기사가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참고로 아래는 오늘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문화면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Magicboy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그 기사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 .
    역시 문화&책 관련 란이 조선일보가 더 알차다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군요..ㅜㅜ..

    두 신문 다 오랜기간 봐왔지만... 대개의 경우 책 구입시 조선일보쪽의 리뷰가 더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 ... ... 마케팅의 승리일까요 -0- )

    2009.03.09 14:35 신고
    • BlogIcon hangil  수정/삭제

      '문화'와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조선일보 쪽이 지면 할당도 많고 기사량도 풍부하기 때문에 '알차다'라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책'과 관련해서도 조선일보가 한겨레보다 '알차다'는 건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전통적으로 '책'과 관련한 리뷰와 서평은 한겨레가 강세를 보였던 분야인데... 한겨레에 책 광고가 많은 것도 그런 배경이 있는 것 아닐까요?

      2009.03.10 10:05 신고
  2. BlogIcon Mr.Met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선입견을 주는것도 조중동의 무서운 힘같네요..
    어떻게든 그들을 끌어내려야 할터인데...

    2009.03.09 15:00 신고
    • BlogIcon hangil  수정/삭제

      그렇지요..
      긴 세월 그들이 확보한 사회적 영향력과 자본력이 어찌 한겨레와 경향 따위가 감히 넘볼 수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독자들과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으로 정당한 평가를 내려야겠지요.

      2009.03.10 10:07 신고
  3. BlogIcon candyboy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조선일보의 기사가 더 알차죠. 돈과 기자가 많으니까요.
    한겨례도 우리가 읽어주면 그렇게 될수 있습니다.
    전 그래서 한겨례의 유료구독자죠. ^^

    2009.03.09 16:11 신고
    • BlogIcon hangil  수정/삭제

      ^^ 돈과 기자가 많으니깐 기사가 '알차다'.. 있을 수 있는 평가입니다.
      다만 양적으로 '알차다'는 것과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알차다'는 것은 구분해서 평가해야 될 것 같구요.

      저도 한겨레 유료독자입니다~ ㅎㅎ

      2009.03.10 10:08 신고
    • BlogIcon candyboy  수정/삭제

      돈과 기자가 많으면 양적으로 유리할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유리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기자가 쓴 기사를 선별해서 기사화 할수 있으니까요.
      또 뛰어난 기자를 양성할 여건도 갖추게 되고...

      언론도 빈익빈부익부 의 틀에서 벗어날수 없는거죠. ^^

      2009.03.10 11:24 신고
  4. BlogIcon 김기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고 뭐라고 의견을 개진하긴 힘들 것 같고... 부디 좋은 정도를 꾸준히 유지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독자는 늘어날테니까요. 업계 순위에 복지부동이란건 없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포스팅이 일회성이면 글을 쓴 블로거마저 창피하게 만드는 꼴이니까요. ^^;

    candyboy// ㅋㅋ 조선 망하게 하려면 유료 구독해서 읽으라는 진심 어린 글을 못보신 모양입니다 그려 ^^;

    2009.03.09 19:10 신고
    • BlogIcon hangil  수정/삭제

      일회성에 끝나는 건 절대 아니겠지요.
      조중동의 나쁜 기사를 지적하느라, 글을 쓰지 못했을뿐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평가할 수 있는 기사들이 매일같이 쏟아지거든요~

      2009.03.10 10:09 신고
  5. cbgvds  수정/삭제  댓글쓰기

    sdgsdf

    2009.03.10 10:11 신고
  6. BlogIcon 단군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정말 알찬 기사 하나 보여 드릴께요...함 와 보세요...이 만큼만 알차면 더이상 뭘 더 바라지 않습니다...

    2009.05.07 01: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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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전문 블로그 : 미디어후비기
콧구멍에 코딱지가 앉았을 때, 코에 먼지와 온갖 잡것들이 쌓였을 때, 그래서 뭔가 찝찝하고 불편하고, 때론 숨쉬기가 힘들 때, 코 한 번 시원하게 후비고 큰 덩어리를 파내고 나면 가슴 속까지 후련함을 느낍니다. 방송을 보면서, 미디어를 접하면서 느끼게 되는 '뭔가 찝찝함', '뭔가 불편함', '뭔가 파헤쳐야 하는 궁금함'을 시원하게 후벼볼랍니다. 미디어, 누구나(who) 후벼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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