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보도, 무력한 반대 여론주도 상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보수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준안이 상정된 이후 ‘농촌당’ 의원들의 반발과 농민들의 이기주의로 인해 무산, 연기를 반복하는 진통 끝에 우리나라는 마침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48개국 중 147번째 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이 된 셈이다. 정부와 보수정당, 재계, 보수언론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끝났는가.
누구 하나 ‘딱’ 부러지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능한 국회’, ‘대외신인도 하락’, ‘통상미아’ 등 살벌한 용어로 FTA 비준을 강요한 보수언론에 떠밀려 비준안을 통과시킨 당연한 결과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는 보수언론들과 달랐다. ‘한-칠레 협정 처리 좀더 유보를’(11일 사설) 주장하는가 하면, 통과된 이후에도 “유감을 금할 수 없다”며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17일 사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정도가 전부다. 전규찬 강원대 교수가 “한겨레 등 비판적 신문의 태도는 한마디로 한심스럽다”며 “다수에 공감하면 찬성 의사를 설득력 있게 밝히고 그렇지 않다면 소수자의 신념을 분명히 지켜야 할텐데, 애매하고 무력하기만 하다”(3일 미디어전망대)고 이미 지적했건만 한겨레의 모습은 여전히 이 수준에 머물렀다. “우리나라가 ‘통상미아’로 전락…대외신인도가 추락…전혀 그른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 상태에서 문제가 다 풀릴 것 같지 않다…시간을 두고 처리하는 게 좋다고 본다…17대 국회로 넘겨 매듭짓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11일 사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넘어갔다.
도리어 보수언론의 여론호도를 쫓아가는 기사도 있었다.
1월31일 기사 ‘연초부터 거센 통상파고’(11면)는 한국이 여러나라로부터 각종 통상압력을 받고 있는 현실과 함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해 “수출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1월29일에는 ‘올 FTA 15건 타결 전망’(31면)에서는 각 나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 소식을 전하며 FTA가 ‘세계적 대세’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보도태도를 극명하게 보인 기사가 바로 2월10일 ‘가전·자동차 등 칠레시장 가격경쟁력 약화, 일본·싱가포르 FTA협상 걸림돌 될 수도’(3면)였다. 전날 국회에서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통과가 무산되자 보수언론들이 총공세에 나서며 내세웠던 ‘대외신인도 하락’, ‘수출경쟁력 저하’ 논리가 이 기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더 큰 문제는 논조뿐 아니라 논리전개에 있어서도 ‘과장’을 일삼는 보수언론의 태도를 빼다 박았다는 점이다. 이 기사는 코트라(KOTRA)의 자료를 인용해 “우리의 대칠레 주력 수출상품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져…자동차는 2003년 20.5%에서 지난해 18.8%로 떨어졌다”며 한국자동차의 칠레시장 점유율을 언급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조차 “자동차(27%)와 석유제품(145%), 합성수지(45%) 등은 수출 증가세”(1월12일 33면)라고 인정했고, 한겨레도 이미 지난해 11월21일 사설에서 “지난 9월까지 통계를 보면 자동차 등의 칠레 수출이 늘어나고 있어 그리 걱정할 상황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면서도 ‘비준 늦어져 대외신인도 추락’이란 큰 제목까지 달아 보도한 까닭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동안 한겨레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나의 시장 이견해소 힘들 듯’(11월18일 14면), ‘미주자유무역지대와 미국의 후퇴’(12월16일 27면) 등 세계화에 비판적인 기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들어 이런 보도는 찾기 힘들어졌다.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기사가 있었지만 광범위한 ‘반세계화’ 움직임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자유무역협정이 ‘자본과 시장의 세계화’가 분명할진대 최근 한겨레의 보도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문마저 갖게 한다. 아직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의 보다 치열한 고민이 절실하다.

(이 글은 2004년 2월 19일자 한겨레신문 '한겨레비평'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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