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겨레에 "이탈리아 최고 여성 앵커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편향적인 뉴스에 반발해 전격 사퇴했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이탈리아 국영방송인 라이1(Rai1)의 메인뉴스프로그램인 'TG1'의 앵커 마리아 루이자 부시(Maria Luisa Busi)가 지난 주말 보도국의 편향성을 비판하는 편지를 사내 게시판에 붙이고 뉴스를 떠났다는 것이다.

한겨레가 영국의 인디펜던트를 인용해 전한 내용에 따르면, 부시는 이탈리아 총리인 베를루스코니가 지난해 임명을 밀어붙인 'TG1' 뉴스의 에디터 아우구스토 민초리니와 갈등을 빚어왔다고 한다. 민초리니는 임명 후 친정부 성향의 뉴스로 비난받아왔고, 특히 지난 3월 지역선거를 앞두고 방송감독기구로부터 집권당에 유리한 보도를 하면서 야당에 대해서는 보도를 소홀히했다는 지적을 받아 벌금을 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베를루스코니의 방탕한 생활을 다룬 토크쇼도 중단시키려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부시는 이같은 베를루스코니에 편향된 뉴스에 반발해 앵커 자리에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전까지 부시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언론인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보고 웹 서핑을 해보니 잘은 모르지만 이탈리아의 최고 여성 앵커라 칭할만한 인물인 것 같다.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분들은 'TG1 Maria Luisa Busi'를 검색해보면 알 것이다.

TG1의 마리아 루이자 부시



어쨌든 한나라의 최고 앵커 자리를 제 발로 내찬 부시를 보며 오버랩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의 공영방송 KBS에서 벌어진 일이다. KBS는 국영방송이 아닌 공영방송임에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줄곧 정권 편향성에 대한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이미 KBS는 '김비서'라 불린지 오래고, '개비씨'라고도 비하당하고 있다.

그 KBS에서 최근 부시의 사례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어제 KBS의 대표 시사프로그램인 <KBS스페셜>의 PD들이 "더 이상 <KBS스페셜>을 망치지 말라"라며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KBS스페셜> PD들은 성명에서 "PD 15명(CP 2명 포함)이 최근 2달 간 13편의 오더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우리의 열정을 비웃고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부당한 압력에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13편의 오더성 프로그램 가운데는 "공안정국 조성 논란과 관계된 <천안함>관련 5편, 세종시 관련한 <도시의 탄생>편, 이명박대통령의 연설과 관련된 <4.19세대> 3편"이 있었다고 한다.

△ 2월7일: 도시의 탄생 - 세종시 관련 구설수 오름

△ 2월28일: 김연아 스페셜 - 2일 만의 긴급제작으로 인한 사실 오류 (김연아 선수화 관련한 일본 장인 미화, 아사다 마오만 추가 취재)로 스페셜의 신뢰도 실추

△ 3월6일: 젊은 그들 - 교양국 스페셜팀에 제작인원이 6명밖에 없는데도 별도 특집으로 스페셜PD를 3명이나 차출해 스페셜 제작일정에 크게 혼선 초래

△ 4월3일: 천안함 침몰, 국민의 마음을 모읍시다 - 천안함 침몰(3.26)과 관련해 원인규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모성격의 방송을 해서 많은 논란과 일부 국민의 반발을 초래

△ 4월4일: 천안함 침몰, 9일간의 기록 -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원인규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 강행해 논란초래, <다큐3일>의 제작진이 해당 프로그램용으로 만든 것을 굳이 KBS스페셜에 방송할 필요가 있었는지 사내 논란 초래  

△ 4월17일,18일,19일: 4.19세대의 증언 다큐멘터리 2편+토론1편 - 이미 작년에 기획을 논의한 후에도 손 놓고 있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연설 등에서 4.19세대의 민주화 업적을 강조한 시점인, 4.19 한 달 전에야 경영진이 제작  지시

△ 4월24일: 천안함 모금방송 - 모금방송의 적절성 논란. 생방송 당시 주로 경찰들만이 출연해 논란

△ 4월27일: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오은선의 꿈과 도전 -스페셜 방송이 아닌데 스페셜PD의 긴급 투입으로 정규 프로그램 제작일정 혼선 초래

△ 5월2일: 히말라야 세계 최초 HD생중계, 어떻게 이뤄졌나 - 이미 6회나 생중계하고 별도 다큐멘터리까지 방송한 상태에서 3일 만에 급조된 프로그램으로 스페셜의 완성도에 흠집

△ 5월22일: 특별기획 천안함 사건 이후, 앞으로의 과제는?

△5월23일: 긴장의 서해, NLL을 생각한다 -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풍을 이용한다는 논란, 토론프로그램을 굳이 스페셜 시간에 내 스페셜 브랜드가치에 손상



<KBS스페셜> PD들은 "KBS스페셜을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라며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직장인이기에 앞서 국민에 봉사하는 공영방송의 언론인"이라며 "더 이상 우리를 정권의 도구나 자신들 정치적 야욕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단호히 거부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MB정권의 특보사장 김인규를 향해 경고했다.

<KBS스페셜> PD 15명(교양제작국 KBS스페셜PD일동 : 공용철, 장성주, 황대준, 정현덕, 이후락, 박건 / 기획제작국 KBS스페셜PD일동 : 유성문, 윤진규, 이재오, 양홍선, 송웅달, 강성훈, 이호경, 염지선, 남진현)은 이 같은 입장을 자신들의 이름을 직접 걸고 발표했다.

물론 라이1의 부시처럼 스스로 자리를 박차면서까지 이런 자신들의 당하고 있는 부당함을 거부한 건 아니지만, 보복인사가 일상화된 지금의 KBS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저항한 것은 간단히 치부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부시와 <KBS스페셜> PD들의 행동은 권력의 도구이기를 거부한,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행위라는 데서 같다.


MB정권 출범 이후 KBS가 정권에 장악되는 과정이 베를루스코니 하에서 이탈리아에서 벌어졌던 언론장악과 닮았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그나마 KBS가 권력에 완전히 장악당하기 직전 <KBS스페셜>은 스스로 이미 '언론과 민주주의 -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일들을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 한국의 방송은 이탈리아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비극이다. 베를루스코니 치하에서도 부시 같은 이가 저항하고 있고, KBS에서도 <KBS스페셜> PD들은 물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든 사람들이 '권력의 방송'을 거부하고 저항하고 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희망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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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2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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