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지난 6월 11일자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수신료 인상을 위한 대대적인 인력감축 계획이 담긴 이번 조직개편은 BCG(보스턴컨설팅그룹)에 맡긴 컨설팅 보고서에 기초해 이뤄졌다. KBS는 이 컨설팅을 위해 BCG에 24억원을 줬다.


그런데 이번 조직개편에는 인력감축과 과거 정연주 사장이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팀제를 국체제로 전환하는 등 말 그대로 조직을 개편하는 것 외에 중요한 부분이 또 있다.

바로 '게이트키핑 강화'와 '기자/PD 협업'이 그것이다. 이 둘은 그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결코 나쁜 뜻은 아니다. 언론사로서 게이트키핑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 자체는 나쁘다 볼 수 없고, 기자와 PD의 협업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앞으로를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MB 특보 출신 사장이 이런 순수한 의도로만 이런 일을 할리가 없다. 여기엔 너무나도 시커먼 속내가 담겨 있다. 바로 이미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KBS에서 완전히 비판 기능을 말살하겠다는 것이다.

KBS 기자와 PD들은 이전에도 게이트키핑이 충분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김인규 사장은 3단계 정도였던 게이트키핑 과정을 6단계 정도로 늘렸다. 바로 선임-데스크-부장-국장-본부장-사장 등으로 올라가는 게이트키핑 과정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는 초장에 완전히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자/PD협업'은 말이 '협업'이지 사실은 PD들을 길들이고, 궁극적으로는 PD들이 그동안 보여왔던 사회비판의식을 완전히 거세하겠다는 의도로 추진되고 있다.

KBS 특보사장 김인규는 KBS 사장이 되기 전 서울대 동창회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방송개혁 1번이 PD 개혁"이라며 "KBS는 PD 300명 들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PD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인식과 적대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물론 이런 말은 그의 개인적인 관점이기도 하지만, MB 특보 출신답게 MB 정권의 그것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PD수첩'때문에 호되게 당한 MB정권이 PD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 이미 KBS는 PD들의 비판정식을 말살시키기 위해 전임 낙하산 사장 이병순 때 '시사투나잇'을 폐지했고, 그 후속으로 만들었던 '시사360'마저 폐지했다.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KBS는 과거 '제작본부' 산하의 '시사교양제작국'에 소속된 '추적60분'을 '보도본부' 산하의 '시사제작국' 소속으로 이전시켰다. 보도본부로 이전하면서 '추적60분'을 책임지는 '시사제작국장'은 PD 중에서 뽑겠다고 했지만, 김인규 사장의 그의 수족 노릇을 충실히 했던 기자 출신의 이화섭을 그 자리에 앉혔다. 즉 특보사장의 말을 잘 듣는 기자 출신 간부를 통해 '추적60분' PD들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이화섭과 관련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말이 '협업'이지 시사고발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을 김인규 특보사장 손아귀에 넣고 맘껏 주무르며 강화된 게이트키핑을 통해 철저히 비판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KBS 앞에서 1인시위 중인 KBS 입사3년 김범수 PD. 추적60분 막내PD라고 한다.


너무나도 의도가 뻔한지라 KBS PD집단과 '추적60분' PD들은 거세게 저항했지만 김인규는 끝내 밀어붙였다. '추적60분' PD들은 '보도본부 추적60분에는 안가겠다'고 했지만, 인사발령도 일방적으로 내버렸다. 참다못한 KBS 입사 3년차 '추적60분' PD(김범수 PD)가 KBS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화가 납니다. 분노가 치솟습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샤워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저도 모르게 욕을 합니다. 이러다가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라며 "도대체 누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올린 이 글은, 아래 전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너무나도 가슴 절절하여 KBS 내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사이 KBS 사측은 김범수 PD가 올린 글을 삭제했다.

김범수 PD가 "정말 BCG는 <추적60분>을 보도본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을까요", "특보사장의 장남이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등의 내용을 올린 것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특히 김인규의 장남 결혼과 관련해 '괘심죄'가 적용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범수 PD는 김인규가 PD들에 대해 불신을 갖는 것을 바꾸지 않겠지만, 자신 역시 김인규에 대한 불신이 크다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지적했다.

일단 제 상식으로는 특보 출신이 공영방송 사장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입사할 때 저는 개인신상정보 카드에 가입한 정당이나 입사 전 정치활동 내용을 적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공영방송 KBS에서 정치적 중립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사장은 예외입니다. 대통령의 언론특보였던 사람이 떡하니 사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작년 12월 18일 특보사장의 장남이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에는 정치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물론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왔습니다.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결혼날짜가 KBS 사장 취임직후에 잡힌 데 대해 특보사장은 "이미 (사장으로 결정되기 전인) 지난 7월에 잡은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결혼은 작년 10월에 있었던 KBS 사장 공모 전에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특보사장은 자신이 곧 재벌의 사돈이자 유력 정치인의 사돈이 될 줄 알면서도 공영방송 사장직에 응모한 것입니다.

그는 ‘공영방송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KBS의 대전제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치명적인 결점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을 통틀어도 이 정도의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은 몇 명 안될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김인규가 재벌인 현대가(家)와 사돈지간인 점을 거론한 것에 대해 '김인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김인규 장남과 현대해상 회장 딸의 결혼식 모습. 왼쪽 두번째부터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김인규, 정몽준-출처:미디어오늘


하지만 김범수 PD가 없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김인규 장남과 현대해상 회장 딸의 결혼식은 김인규의 KBS 사장 직후에 실제 있었다. 그런데도 김인규는 글쓴이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삭제했다는 것이다.

KBS 방송을 통해 PD들의 비판정신이 표출되는 것뿐만 아니라 KBS 사내에서조차 PD들의 비판과 표현의 자유를 거세하고, 옥죄는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김인규의 시도는 성공할까?
요즘 KBS가 심상찮다. 시민들로부터 '어용노조'라 비난받은 KBS노조의 행태를 참다못한 KBS 구성원들이 새로만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이미 조합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총파업을 결의해놓은 상태(관련글 : 93.3% 압도적 찬성으로 KBS본부 총파업 가결!)다.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결과 KBS본부는 6월안에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김인규의 일방통행에 참다못한 KBS PD들 또한 결연하게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범수 PD를 비롯한 '추적60분' PD들은 KBS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고, KBS PD들이 집단으로 삭발시위를 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비록 이근행 위원장이 해고당하고 100명이 넘게 징계받았지만, MBC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고, 여기에 이번엔 KBS의 양심적인 언론노동자들까지 일어서고 있다. MB정권 출범 직후부터 시작된 방송장악에 언론노동자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다시금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김인규의 시도가 성공할지는 이 싸움의 승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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