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자진사퇴했다. 신재민 문화부장관 내정자,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내정자도 스스로 물러났다. 어느 정당에서 논평했듯 '사필귀정'이다. 누굴 탓하랴.

하지만 이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다. 국민들의 시각에서는 당연히 후보자들 스스로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지만, 이번 '인사대란'에 대해 자진사퇴한 후보자들 외에도 '내탓이오'를 외쳐야 할 사람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책임은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현 정권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보수신문들도 이번 사태를 겪으며 반성 좀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한 번 보자.

8월 12일 조선일보에는 <김태호의 손인사, 캐머런(영 보수당 40대 총리) 벤치마킹?>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미 많이 알려진 기사지만 그래도 한번 더 살펴보자.

8월 12일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8.8 개각을 통해 '깜짝 등장'한 다음날부터 정치권에서는 각 신문에 실린 김 내정자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띠며 오른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는 모습이 영국의 40대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의 '복사판'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친이계의 한 의원'의 말을 빌어 "그동안 신문에서 보던 우리 정치인들 사진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거나 어색하게 손 흔드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는데, 김 지사의 경우는 좀 다르지 않느냐"고 했고, 또 다른 '친이계의 한 핵심의원'의 말을 빌어 "김태호는 훤칠한 외모와 농촌 출신, 서민적 취향 등이 묘하게 어우러져 캐머런이나 토니 블레어, 미국 오바마와 비슷하게 젊은 층에 어필하는 매력이 있다. 여권에서 이런 경쟁력이 있는 인물은 드물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친이 소장파의 한 의원'을 통해서는 "꼭 김 내정자를 대권 주자로 만들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김태호의 '젊음' 소통' '신선함' 등을 통해 젊은 층이 느끼는 보수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것"이라고도 전했다.

김태호의 '매력'을 기정사실화시켜놓고 노골적으로 낯뜨거운 '캐머런 닮은꼴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언론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총리 후보자의 자질검증은 뒷전이면서 말이다. '손만 흔들면 캐머런이냐'는 비아냥이 터져나왔지만 '양파총리'의 본질이 드러나기 전까지 조선일보는 검증에는 손놓고 있었다.

8월 10일 동아일보에 등장한 <"에쿠스 대신 그랜저" 몸 낮춘 젊은 총리>도 낯뜨겁긴 마찬가지다.

8월 10일 동아일보 2면


동아일보는 8일 밤 총리실에서 김태호 내정자에게 "(공식 취임 때까지 사용할) 예비용 차량으로 에쿠스와 그랜저TG가 준비돼 있는데 어느 것을 사용하겠느냐"고 묻자, 김 내정자가 "큰 차로 하지 말라"며 그랜저TG로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내용을 가지고 김태호에 대해  "그는(즉 김태호 내정자)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효율을 중시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 들어선 김 내정자는 회의 탁자 상석에 자리가 마련된 것을 보고 '편안하게 앉자'며 다른 자리로 옮기려다 간부들이 거듭 권유하자 상석에 앉았다", "총리실 간부들과의 회의에서 김 내정자는 '부서별 업무보고를 생략하는 대신 주요 현안별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부서별로 업무보고를 받느라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피하고 대북관계, 4대강 사업 등 현안을 깊이 있게 파악하겠다는 뜻이라는 설명이다"라며 김태호 내정자가 대단히 겸손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도했다.

물론 총리 후보자가 에쿠스가 아닌 그랜저를 선택했다는 것이 권위와 겉치레에 얽매인 자들의 시각으로는 '겸손함'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백보양보해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이는 곁가지에 불과한 내용이다. 한 줄 정도 걸쳐서 '이런 모습도 있더라'고 하는 건 모르겠지만 사진까지 대문짝만하게 박아서 "몸 낮춘 젊은 총리"라고 떠드는 건 정말 낯뜨거운 찬양가다.

동아일보는 오늘 사설에서 "청와대의 인사 추천과 검증시스템이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데서 이번과 같은 대형사고가 터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연한 지적이긴 하지만 국민의 기대치를 대변해야 할 동아일보 스스로는 그런 역할을 했을까?

조선일보 또한 오늘 사설에서 "이번 인사 파동의 근본 원인이 사퇴자들 신상의 흠결이 아니라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법적·도덕적·정치적 기준의 문제라는 말이 된다. 청와대의 법의식과 도덕감정이 국민과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태호를 캐머런으로 만들려고 했던 조선일보는 국민과 같이 놀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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