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한우(기획취재본부장을 맡고 있는)가 오늘(10월 28일) 칼럼으로 <사극, 역사 왜곡 해도 너무 한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한우가 궁금하다면? : http://www.mediawho.net/196)

이한우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인기를 끈다고 해서 몇 편을 보다가 접었다"며 그 이유를 '뿌리깊은 나무'(뿌나)의 역사왜곡 때문으로 설명했다.

이한우는 "역사 '드라마'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왜곡하고 허구를 지어낸다면 그것은 이미 '역사' 드라마가 아니다""'공주의 남자'도 '역사' 드라마의 범주에 넣기 곤란하고, 지금 방영되는 '뿌리깊은 나무'는 그 왜곡 정도가 훨씬 심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어쩌면 역사드라마는 현재 우리가 역사를 읽어내는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며 "차라리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한 추리극이나 방영하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굳이 '역사' 드라마를 하고 싶다면 일정한 선을 지켜줄 것을 부탁드린다"며 "역사드라마의 교육적 기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한우는 '뿌나'의 역사왜곡이 "해도 너무한다"고 한 대표적인 예로 '뿌나'가 그린 태종과 세종의 관계를 들었다. '뿌나'에서는 세종이 자신의 장인 심온과 그 일가, 노비들까지 모두 죽인 것을 두고 아버지인 태종과 대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한우는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도전과의 대립구도도 뜨악하다"며 "태종·세종과 정도전 잔존세력의 대립은 애당초 있을 수 없는 황당한 허구적 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한우가 "몇 편을 보다가 접었다"더니 그 몇 편조차도 제대로 안 본 모양이다.

이한우는 "장인 심온을 죽였다고 해서 아버지 태종에 정면대립하는 모습은 결코 세종이 아니다"며 "드라마에서는 세종이 아버지의 칼에 호위무사의 칼로 맞서려 했지만 역사 속의 세종은 크게 달랐다"고 했다.

물론 드라마의 세종의 실제 세종의 모습을 크게 다를 것이다. 하지만 '뿌나'에서는 드라마 제작진도, 나도, 이한우도, 시청자 그 누구도 실제로 보지 못한 세종의 모습을 꽤나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다.

똘복이를 죽이라는 태종에게 "그 애를 죽이려는 나를 먼저 죽이라"며 대항하는 세종, 그러자 태종이 "그러면 죽어라"라고 칼을 들이대자 무휼에게 태종이 자신을 죽이면 태종을 벨 것을 명하는 세종의 모습은 분명히 '허구'일 것이다.

출처-SBS '뿌리깊은 나무'


이 장면은 이한우의 주장대로 태종에게 정면대립하는 세종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뿌나'는 이 장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고뇌하고 차마 상왕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괴로워하는 세종의 모습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소개했다.

이한우는 심온이 죽은 다음날의 세종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은 세종의 불편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한다"며 "세종이 느꼈을 자괴감과 비참함은 쉽게 헤아려 볼 수 있다"고 했다.

'뿌나'는 이한우가 말한 세종의 자괴감과 비참함을 더할 나위 없이 묘사했다. 칼까지 들이댄 세종과 태종의 대립장면은 말 그대로 드라마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세종의 자괴감과 비참함의 극단이었다. 심지어 세종은 다음날 태종 앞에 석고대죄하고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며 "전각이나 하나 지어달라"고 한다. 그 전각이 바로 '집현전'이다.

이한우가 칼럼에서 설명한 세종의 모습이나 '뿌나'가 그린 세종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칼을 들이댄 장면이 나왔다고 해서 "해도 너무한 역사왜곡"이라니.

이한우가 "태종·세종과 정도전 잔존세력의 대립은 애당초 있을 수 없는 황당한 허구적 설정"이라고 한 대목은 오히려 역사왜곡은 이한우가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태종이 정도전과 그 세력들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한 것은 이미 역사적 사실이다. 태종에 의해 죽임을 당한 정도전이 복권된 것은 몇백년이 지나 고종 때 와서 흥선대원군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 동안 정도전을 추종하던 세력은 고초의 세월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고, 적어도 세종 때까지만해도 집권세력과 긴장관계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밀본'이 허구적 설정이라 하더라도 이를 역사왜곡으로 폄하할 것이 아니라 건국초기 성리학자들과 왕권 사이의 긴장관계를 드라마를 통해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적 재미를 불러일으킨 '똥지게 진 세종'의 모습


드라마를 보며 이 정도 여유조차 없으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드라마를 보나 모르겠다.

이한우는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해 태종편, 세종편 등을 포함해 6권의 <군주열전>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조선왕조 역사에 대해 꽤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아는 것과 턱없이 달리 그려지는 '뿌나'를 보고 "해도 너무한다"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록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교양서와 역사를 바탕으로 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드라마는 확연히 다른 장르다. 교양서 쓰던 수준으로 드라마를 평가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한국 방송사극계의 원로 중 한 명인 신봉승 작가('조선왕조500년'의 작가)도 '뿌나'의 역사왜곡을 문제삼은 글을 썼다.

(관련글 : 작가들은 역사인식을 수반하는 의식이 있어야)

재밌는 것은 이한우와 신봉승이 2010년 5월, 사극의 역사왜곡을 문제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이 둘의 인터뷰를 실은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 <"좌파 10년간 우리 역사를 부정하다 보니 정사가 희화화돼">이다.

(참고글 : 조선, '동이' 깨방정 숙종도 좌파 10년 탓)

이 인터뷰에서 이한우가 "우리 방송의 사극은 왜 이렇게 됐는가?"라고 묻자, 신봉승 작가는 "역사의식을 가진 작가, 국가적 맥락의 중요성을 아는 작가가 거의 없다"며 "지난 10년 좌파정권이 방송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뒤집어보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것이다.

이랬던 두사람이 '뿌나'를 두고 공통적으로 역사왜곡을 문제삼는 것을 보니, 방송장악이 완료되고 이명박의 레임덕이 이야기되는 지금도 어쩌면 '좌파정권 10년'이 그 영향을 미치고 있을거라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가 만든 종편 TV조선은 가상의 통일한국을 다룬 드라마 '한반도'를 제작할거라고 밝혔다. 이한우는 '뿌나'는 재밌게 보는 사람이 많은 반면 TV조선이 만들 '한반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추노> 이후 오래간만에 본방사수할만큼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났는데, 바쁘고 똑똑하고 훌륭하신 이한우 기자께서 부디 마음 너그럽게 잡수셔서 트집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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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dow7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극을 보지는 않지만 사극에 대해 걸고넘어지는 거 보면 어이상실. 사극에서 걸고넘어질 건 고증이 제대로 됐나 여부지, 스토리 전개가 아니다. 허구와 판타지를 현실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을 교화할 문제지, 허구와 판타지가 본연의 모습인데 그 본연의 모습을 바꾸라고? 독재자가 위대했다고 개뻥까는 인간들이 사극이 뭐가 어째? 누구도 누구처럼 총맞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카다피처럼 막대기로 똥침맞았을지 몰라.

    2011.10.28 18:51 신고
  2. 가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승만을 부각했던 <KBS 다큐 이승만 3부작>의 드라마 버전이

    12월 1일 개국하는 tv조선 개국기념으로 ,
    jTBC 개국기념으로는 <인수대비>를 방영한다고 하는데요.

    조선일보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TV조선과 동아일보는 역사를 어떻게 표현할까요?

    2011.10.29 07:22 신고
    • BlogIcon hangil  수정/삭제

      정말 어떻게 만들까요?
      조중동 종편에서 만들 드라마들은(사극이나 시대극의 경우) 아마도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점철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 같네요..

      2011.10.31 18:28 신고
  3. BlogIcon 안달레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걸 떠나서 조선에서 왜곡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왠지 희극이 되는것 같네요^^

    2011.11.01 07: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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