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진 다음날(11월1일), 조선일보가 <한명숙 전 총리 또 무죄, 앞날 위태로운 검찰>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납득 안된다, 증거 없다"... '5만달러 재판' 이어 검찰 또 굴욕>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썼다.


둘 다 말이 된다. 그 자체로 적절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제목의 사설과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리는 순간, 정당한 지적은 한순간에 코미디로 전락하고 만다.


2011.11.1 조선일보 사설

2011.11.1 조선일보 12


한명숙 무죄와 관련해 검찰을 질타하는 조선일보의 이런 기사와 사설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전지적 가카시점' 또는 '유체이탈화법'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가카와 같은 반열 위에 올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불충을 무릅쓰고 주장해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 <한명숙 전 총리 또 무죄, 앞날 위태로운 검찰>에서 '검찰'을 '조선일보'로 바꿔도 전혀 무리가 없다. "'5만달러 재판' 이어 검찰 또 굴욕"에서 '검찰'을 '조선일보'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한명숙 전 총리 또 무죄, 앞날 위태로운 조선일보',
'조선일보 또 굴욕'


한명숙 전 총리가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굴욕을 당하고, 앞날이 위태로워진 게 어디 검찰뿐이랴. 검찰을 앞세워 정치보복적 수사를 해온 모든 세력과 집단이 모두 굴욕을 당하고 앞날(그래봤자 얼마 안남은 앞날이지만)이 위태로워졌다.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존재가 바로 가카이고, 결코 뺄 수 없는 집단이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한명숙 재판의 시작과 중요한 변곡점에서 사실상 검찰을 대리해 맹활약을 펼쳤다.

한 전 총리는 별개의 2건의 사안으로 각각 재판을 받았다. 첫 재판은 대한통운 곽영욱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약 5500만원)를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에 대한 것이었고, 두번째 재판은 한신건영 한만호 사장에게서 9억원을 불법정치자금으로 받았다는 혐의에 대한 것이었다.

2009년 12월 4일 조선일보 1면


앞의 5만달러 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2009년 12월 4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한명숙 전 총리에 수만불">을 통해서였다. 그뒤 MB정권 아래서 흔하게 봐왔던 '검찰의 흘리기-->조중동 받아쓰고 부풀리기-->검찰의 굳히기' 공식에 따라 '한명숙 죽이기'가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하지만 5만달러 건은 2010년 4월 9일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난다. 그리고 판결 바로 전날 검찰은 새로운 혐의, 즉 9억달러 건을 언론에 흘린다.

그래서 5만달러 무죄 판결이 내려졌던 2010년 4월 9일 아침 조선일보 1면에는 <검 "한명숙 9억 받았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고, 이를 해설하는 12면 기사에는 "1심 선거 전날...한 전총리 '정치자금 불법수수' 새 혐의 압수수색" 기사가 실린다.

2010년 4월 9일 조선일보 1면

2010년 4월 9일 조선일보 12면


한신건영으로부터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는 혐의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한신건영의 부도로 피해를 당한 누군가를 내세워 "한 전 총리건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이고, 터질 것이 터졌다"는 코멘트를 실었고, "검찰 관계자들은 불법 대선경선 자금 수수와 관련한 한 전 총리의 구체적인 혐의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혐의 입증을 어느 정도 자신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리고 "검찰관계자들이 구체적인 혐의 내용에 대해 함구했다"면서도 "한신건영 관계자 여러명이 한 전 총리에게 4차례로 나눠 돈을 전달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데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시점에 회사 돈을 인출한 구체적인 내역과 달러 환전 기록 등을 확보했다는 것"이라며 검찰의 자세한 수사 내용을 기어이 기사화하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보여줬다.

이로써 2010년 4월 9일 무죄 판결을 받고도 한 전 총리의 고초를 끝나지 않고, 1년을 더 훌쩍 지나 이제와서야 무죄 판결을 받고 검찰의 족쇄에서 해방되게 된다.

자, 한명숙 전 총리의 손발을 옭매는데 과연 검찰의 책임밖에 없을까? 한 전 총리가 무죄판결을 받은 것은 그저 '검찰의 굴욕'에 그치는 사안일까?

조선일보는 과연 이번 사안에서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둑 장기 훈수두듯, 스포츠경기 중계하듯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처럼, 자신의 존재를 객관화시켜 "검찰의 굴욕"이니 "검찰의 앞날이 위태롭다"니 따위의 말을 할만큼 한가한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걸까?

안철수 현상을 두고 마치 자신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마냥 "올것이 왔다"고 하던 MB,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대해 "변화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갈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관전평이나 늘어놓고 경호처장으로 어청수를 불러들인 MB.

그 MB와 조선일보, 정말 빼다박지 않았나?

가카가 아직 '당선인'이던 시절,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이 쓴 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방 회장 앞에 머리 숙여 악수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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