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북한을 탈출하던 어떤 남자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는 보도를 접한 것은 11월 7일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뜬 기사에 의해서다. 탈북자단체 관계자가 '증언'했다는 이 기사는 처음부터 미심쩍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를 봐 온 사람이라면 알테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북한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낚시성 기사'가 우후죽순 쏟아지는지를.

사실 관계를 알 수 없는 북한 관련 소식들이 국내 인터넷언론들의 주요 돈벌이 수단(트래픽을 높이는)이 된지는 이미 오래다. 그리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이, 또 제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뻥튀기돼 호기심을 자극해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게 된지도 이미이미 오래다.

최근만 하더라도 북한 김정은이 1년 전에 결혼했고, 부인은 2살 연하의 김일성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성이며, 미모의 소유자라는 기사가 네이버 뉴스캐스트에서 쏟아졌지만, 황당무계하게도 '김정은의 부인'이라는 미모의 여성은 국내 레이싱걸로 밝혀지기도 했다.

국내 레이싱걸로 밝혀진 '미모의 김정은 부인'


때문에 뉴스캐스트에 올라오는 북한 관련 기사는 왠만해서는 믿지 않는다. 아니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에 이르렀다.

그래서 '탈북자 총살' 보도 역시 미심쩍었다. 탈북자와 관련한 자극적인 기사에 등장하는 '탈북자단체 관계자의 증언'에만 기댄 이 기사를 온전히 믿기엔 이미 쌓인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다.

그런데 어라?

11월 7일 밤 KBS 9시뉴스에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탈북자로 보이는 사람이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이 KBS 카메라에 포착됐다"는 기사가 톱으로 등장했다.

11월 7일 KBS 9시뉴스


'사살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그렇다면 이는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히려 보도를 보면서 더 미심쩍어졌다.

KBS는 "탈북자로 보이는 사람이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이 KBS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했는데, 화면에서는 총에 맞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고, "KBS 카메라에 포착됐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화질의 장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11월 7일 KBS 9시뉴스


또 "KBS 카메라에 포착됐다"면 KBS 취재진이 그 현장을 확인했을텐데, 정작 증언은 음성을 변조한 어떤 목격자의 입을 빌어서 했다.

도대체 어떤 연유일까?

궁금증이 더 커진 탓에 오늘 관련 기사를 더 찾아봤다. 그리고 궁금증과 의구심은 더 커졌다.

먼저 KBS보도 직후 나온 연합뉴스 기사.

KBS뉴스 화면을 캡쳐한 연합보도


연합 기사에 등장한 캡쳐 화면은, 연합에 따르면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이 동행한 현지가이드를 통해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이다.

KBS는 "KBS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했는데, KBS TV를 촬영했다는 연합에는 김용화 회장과 동행한 현지가이드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이라 보도한 것이다. 화질을 보건대 연합의 보도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탈북자 총살' 보도를 처음 본 것은 네이버 뉴스캐스트지만 이 사안이 처음 보도된 것은 11월 7일 동아일보를 통해서다. 동아일보는 1면 톱 기사를 통해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은 6일 '국내 모 방송사와 동행해 20여 일간 북-중 국경 취재를 하던 중 지난달 22일 오후 4시경 40대 탈북남성이 사살되는 장면을 우연히 촬영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11월 7일 동아일보 1면톱 기사


이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1) KBS와 김용화 회장이 북중 국경을 동행 취재했는데, 문제의 장면을 KBS는 포착하지 못했고, 김용화 회장의 현지 가이드가 휴대전화로 "우연히" 촬영한 것이 된다.
2) 문제의 장면이 목격된 날짜도 동아일보는 10월 22일이라 하고, KBS는 10월 25일이라고 보도했다.
3) KBS는 탈북자단체 관계자와 동행취재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동아일보와 연합은 이를 보도했다.

자, 여기서 의문점이 더 많이 제기된다.

첫째, 이 사안을 최초 보도한 동아일보는 어찌된 영문인지 김용화 회장이 촬영했다는 영상 화면을 보도하지 않았다. 화면이 없다면 몰라도 화면이 있다면 이런 기사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증거 사진이 들어가지 않았다. 화면은 다음날인 11월 8일에야 KBS 화면을 캡쳐한 것이 들어갔다.

둘째, 같은 날 YTN에도 관련 보도가 등장하는데 YTN은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북한군의 사살 장면을 목격했고 중국 공안들이 이 탈북 남성을 방치해 숨지게 했다고 말했다"며 김용화 회장의 인터뷰를 인용했는데, 이 사람은 KBS 보도의 화면에 등장하는 음성을 변조시킨 목격자와 옷차림이 같다. 즉 KBS는 김용화 회장과 같이 취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11월 7일 KBS 9시뉴스

YTN보도 화면


셋째, 가장 큰 의문이 가는 대목인데, 왜 KBS는 자신들이 직접 취재하고, 화면까지 입수해놓고도 동아일보가 '단독보도', 즉 특종을 하기 전까지 이를 보도하지 않았을까? 특종을 놓치는 것을 두고 '물 먹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물 먹는 차원을 넘어 확보한 특종을 괜히 시간을 끌다가 다른 언론사에 고스란히 넘겨준 거나 다름없다.

언론사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알 것이다. 언론사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도대체 KBS는 왜 25일 확인한 내용을 10일이나 넘게 묵혀 두고 있었던 걸까?

여기에 추가해서 김용화 회장은 동아일보 인터뷰에 의하면 10월 22일, KBS에 의하면 25일 목격한 ‘충격적인 탈북자 총살’을 왜 11월 6일에 와서야 동아일보 기자(탈북자 출신인 주성하)에게 이야기한 걸까?

의문을 정리하자면, 김용화 회장과 동행취재한 KBS는 휴대폰에 찍힌 그 현장의 모습이 ‘탈북자 총살’로 사실화하기에 주저했던 것이 아닐까? “타이어 펑크나는 소리”같은 총소리가 북한 쪽에서 들렸다는 증언만으로, 누워있는 사람이 총을 맞은 것인지, 정말 북한군이 쏜 총에 맞은 것인지, 그 사람이 정말 탈북자인지,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동아일보가 1면 톱으로 ‘탈북자 총살’을 보도한 뒤에야 뒤늦게 야마를 맞춰서 보도한 게 아닐까?

이런 정황이 아니고서는 KBS가 이미 영상까지 확보한 충격적인 ‘특종’을 동아일보 기사가 나오고 나서야 메인뉴스프로그램의 첫 보도로 내보낸 이유를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물론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이 정말 탈북자일 수도 있고,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숨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런 충격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언론에 대한 불신이 너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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