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미화씨가 기자회견을 하자 KBS가 '김씨 기자회견에 대한 KBS의 입장'을 내놓고 "김미화씨 제시 문건 '블랙리스트' 실체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미화씨가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문서 때문에 제가 일종의 기피인물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공개한 '임원회의 결정사항' 문서에 대해 KBS는 "'불랙리스트' 실체 아니다"고 반박한 것이다.


KBS의 입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째, KBS는 이 문건에 대해 "일부 프로그램의 심의 지적에 대한 단순한 논의 결과일 뿐 이른바 '블랙리스트' 결정사항이 아니"라며 "'임원회의 결정사항' 문건은 심의실의 방송 모니터 지적 내용에 대한 논의 결과를 지역국 등에 전달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미화씨 기자회견에 대한 KBS의 입장


둘째, KBS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라는 표현은 이념적, 정치적 논란이 아닌 내레이터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말한 것으로, 마치 이 문건이 특정인을 겨냥한 '블랙리스트'의 실체로 거론되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라며 김미화씨의 '다큐멘터리 3일' 내레이션과 관련해 당시 김 씨가 내레이터로 참여한 프로그램의 심의 결과, "호흡과 발음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면서 띄어 읽기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부자연스러웠다는 지적이 나왔었다"는 심의 결과를 제시했다.

셋째, KBS는 "유명 방송인이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을 해 KBS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김미화씨뿐 아니라 KBS로서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문건을 들어 공개하는 김미화씨. 춮처-경향신문


자, 이같은 KBS의 입장을 한 번 찬찬히 뜯어보자.

첫째, KBS가 '임원회의 결정사항'에 대해 "심의실의 방송 모니터 지적 내용에 대한 논의 결과를 지역국 등에 전달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은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변명에 불과하다.

김미화씨가 들고나온 문건에는 "일부 프로그램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가 잇따라 출연해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내레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프로그램의 경우는 내레이터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적임자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즉, 김미화씨가 '다큐멘터리 3일' 내레이터를 맡은 것이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게이트키핑을 강화하기 위해 내레이터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적임자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장 이하 KBS 임원들의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이에 따라 KBS에 '내레이터 구성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진다면, 김미화씨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더 이상 내레이터를 맡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뒤에 '내레이터 선정위원회'가 실제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KBS에 'MC선정위원회'는 있지만, '내레이터 선정위원회'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김미화씨는 이 회의가 있기 전 결정됐던 프로그램 출연('사랑의 리퀘스트' 내레이션) 외에 이후 KBS에 얼굴도 목소리도 출연하지 못했다.

'논의 결과 전달' 정도가 아니라 김미화씨가 됐든 누가 됐든 '논란의 대상'이 된 사람은 내레이터로 쓰지 말라는 KBS 최고간부들의 지침이 하달된 것이다. 그것도 KBS의 주장처럼 '지역국 등에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레이터 출연을 담당하는 곳에 하달됐다. '임원회의 결정사항' 문건에는 내레이터 선정 관련 내용에 '해당 본부'로 'TV제작본부'가 적시되어 있다. TV제작본부는 '다큐멘터리 3일', '미지수', '사랑의 리퀘스트', '인간극장' 등 KBS 시사교양프로그램은 물론 드라마, 예능 등 뉴스를 제외한 모든 TV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는 본부다. '지역국'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3일'을 제작한 곳에 지침을 내린 것이다.

둘째, KBS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라는 표현에 대해 "내레이터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말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

일단 '호흡과 발언' 등 내레이터의 자질을 가지고 '논란의 대상' 운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자질이 없으면, '자질이 없는 내레이터'라고 표현하면 그뿐이지 이를 두고 '논란'을 삼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미화씨의 '다큐3일' 내레이터가 심의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김미화씨의 내레이터 자질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적절한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김미화씨가 기자회견에서 공개하고, 지난 4월 KBS새노조가 공개했던 '임원회의 결정사항' 문건


김미화씨가 공개한 KBS '임원회의 결정사항' 문건은 지난 4월 KBS새노조(언론노조 KBS본부)가 이미 공개한 적이 있다.

KBS새노조는 이 문건의 내용을 공개하며 "김미화씨는 지난해 12월 2일 방송된 <환경스페셜>의 내레이터를 맡아 심의위원으로부터 '정감있는 따뜻한 목소리로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KBS새노조에 따르면 이 같은 김미화씨 내레이션에 대한 심의위원의 호평에 대해 임원회의에서 그 어떤 이의도 제기된 적이 없다고 한다.


KBS새노조는 이와 관련해 "그런데 4개월 동안 김미화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자기 '논란의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내레이터 선정위원회'까지 논의되는 것을 보며, 도대체 KBS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자신들이 스스로 호평했던 내레이터에 대해 갑자기 자질을 문제삼아 '논란의 대상'이라고 '임원회의'에서까지 문제삼는 것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KBS가 반박입장이라며 '정치적 논란이 아닌 내레이터의 자질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셋째, KBS는 김미화씨가 '근거없는 추측성 발언을 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자의적인 언어도단이다. 김미화씨가 애초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면, 김미화씨는 KBS 내부로부터 들은 말을 전하며 KBS 사람들에게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자신이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진 근거가 있고, 하다못해 "블랙리스트가 있다면"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근거없는 추측성 발언'이 될 수 있나?

김미화씨가 "임원회의 결정사항 뒤에 정말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물은 것뿐이다. 없으면 '없다' 말 한마디에 끝날 일이었다. 대화로 간단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그러나 KBS는 "암전상인, 제 뒷전에서 활을 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큰 상처를 입히셨습니다"는 김미화씨 말처럼 경찰에 고소했고, 급기야 김미화씨가 경찰서에 직접 출두해 조사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KBS는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어리석고 무도하다.

김미화씨는 KBS를 '친정'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 친정이 뒷전에서 쏜 활을 맞고 큰 상처를 입었다. 연예인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다. 하지만 김미화씨는 "저 뿐만 아니라 제 후배 연기자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고자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미화씨의 싸움을 지지한다. 김미화씨는 KBS 임원들에게 "저에게 예의를 갖추십시오"라고 요구했다.

KBS는 어불성설, 궤변을 집어치우고 지금이라도 김미화씨에게 예의를 갖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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